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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의 열매 - 온유

예사랑교회 2008. 12. 13. 00:34

 


 

 

 

“성령의 열매(8); 온유”

The Fruit of the Spirit(8); Gentleness 갈라디아서 6:1-2


상자에 붙여놓은 이런 레이블을 아마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Fragile: Handle with Care" 깨지기 쉬운 물건이 들어있으니 조심해서 다루라는 취급주의 경고입니다. 이 레이블을 붙여놓으면 상식적으로 사람들이 조심해서 그 상자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경고문이 전혀 소용이 없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이사를 해 보면 그런 속상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되지요. 분명히 취급주의 경고를 해놓았는데도 다른 상자들과 같이 아무렇게나 취급되어 다루어지다가 이렇게 파손당하는 경우 말입니다. 왜 사람들은 경고문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취급주의 레이블을 붙여놓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 레이블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쉽게 무시합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아무렇게나 다루다가 깨지고 상한 영혼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인해, 또는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너무나 쉽게 상처받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물건이야 깨지면 새 것으로 다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과 마음이 일단 한번 깨지면 다시 회복되는 일은 얼마나 더디고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Fragile: Handle with Care – How often have these words been put on a shipment to protect the contents of a package. In an ideal perfect world such boxes would be gently moved from place to place and nothing would ever be damaged. However, in the real world “Fragile: Handle with Care” means nothing. These words are overlooked on packages. Boxes are thrown together and carelessly dropped. Packages are opened to reveal broken and damaged contents everyday.


Do you know the fact that God has placed a “Handle with Care” label on people?  How often is the heart of an individual crushed or the spirit of a child broken? Words and actions damage and wound everyday. Healing and restoration to the human heart can be a slow difficult process; sometimes only God can make the wounded new again.


오늘 우리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여덟 번째로 ‘온유’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온유(溫柔)란 말은 따뜻할 온(溫)자에 부드러울 유(柔)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가시가 돋쳐있거나 거칠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Gentleness 또는 Meeknes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온유하다는 말을 어떤 여성적인 성격으로 또는 유약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오해입니다. 이 말의 희랍어 원어는 ‘prautes’인데, 이것은 ‘통제된 힘’을 의미합니다. 어떤 힘이 통제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파괴적이 되지만, 그것이 통제되어 건설적인 일에 사용되는 힘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prautes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는 그냥 힘이 세서 사방팔방으로 날뛰기는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길들여지면 그때에는 아주 유용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물의 힘이라는 것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것이 잘 통제되면 전기를 만들어 내고, 방앗간에서 곡식을 찧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은 물은 파괴적이어서 홍수나 쓰나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도시를 파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온유란 통제된 힘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과 의지가 하나님의 지배와 목적에 복종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가 통제되지 않으면 그것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상처입기 쉬운 영혼들을 무너뜨리는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그 힘이 제대로 통제될 때에 창조적인 일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온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유는 유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의해 통제된 내적인 창조적 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온유를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셔서 우리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온유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Many people think "gentleness" or "meekness" is just another word for Weakness. That is simply not so. In fact, it’s not the meaning of this word at all. It’s certainly not something that the Holy Spirit would work to develop in our lives. Gentleness is Strength under Control.

Gentleness/meekness is best illustrated by an animal that had been tamed. A tamed horse has yielded or submitted it’s strength; the strength of the animal is no longer wasted wildly, but has been focused in order to fulfill a purpose. The power and force of water can be focused and brought under control to turn a waterwheel and grind wheat, or the water can flow through a dam turning large turbines to produce electricity to give power to an entire city. However, the force and power of water can also be out of control bringing death and destruction through a flooded river or the massive tsunami wave.


Gentleness is power or strength under control; it’s the submission of our strength and will to God’s control and purpose. Gentleness or meekness is not weakness, but is strength under control. Therefore, gentleness is the fruit of the Spirit that brings us under God’s control; it is power under control – submitted strength.


성령의 열매라고 했을 때 열매가 복수형이 아니라 단수형이라고 이미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라고 하면서도 굳이 단수형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그 여러 가지 열매 중에서 내가 선호하는 몇 가지만 선택하고 그 나머지는 취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 없이는 성령의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온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유는 사랑의 접촉입니다. 사랑은 부드러운 접촉을 통해서 온유를 표현합니다. 온유 없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없습니다. 온유가 없으면 우리의 손길은 도움이 아니라 상함이 되고, 기쁨이 아니라 아픔이 되기가 쉽습니다. 오직 우리의 힘을 하나님께 복종할 때에만, 오직 우리의 힘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동안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루만질 때에 그것이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게 된 것은 사실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로는 '다 너의 유익을 위해서야' 하면서 사실은 그 영혼을 아무렇게나 소홀히 취급하여 깨뜨려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Throughout this series on the fruit of the Spirit we have been reminded that it is FRUIT and not fruits. The fruit of the Spirit is one fruit that develops and grows within our lives; it is not a fruit market from which we can pick and choose the fruits we want and leave the others behind. Love is the blossom through which the fruit of the Spirit is produced. Without love there is no fruit. GENTLENESS IS LOVE TOUCHING. Love expresses gentleness through a tender touch. Without gentleness love does not touch others. Without gentleness or meekness our touch is harmful instead of helpful, painful rather than pleasing, selfish instead of selfless. Only as our strength is submitted to God, only as power is brought under the control of the Spirit through love, can we reach out and touch one another. Observing Gentleness in Jesus


이 온유함에 대한 본보기를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또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군사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어수선한 와중에 베드로가 칼을 빼서 한 사람의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26:52-54)


여기에서 ‘열두 영’이라고 했을 때 이 ‘영’은 로마의 군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열두 영 더되는 천사’는 그냥 열두 명 정도가 아니라 수 천 수만의 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천사들을 다 불러내서 당신을 구해내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통제된 힘이 온유인 것입니다.


그에 앞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드시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예배를 받으실 분입니다. 제자들이 수백 번이라도 먼저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려야 마땅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시고 그가 오신 목적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충분한 권리가 있으신 분이지만, 섬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는 이 모습이 바로 온유의 본보기입니다. 이 온유를 어떻게 유약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더 크신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하는 통제된 힘일 뿐입니다.


Jesus had the power to bring the angels in to rescue Him, but He also had the Restraint not to do it. To put it another way, He demonstrated, "strength under control." We could go to Philippians 2 which speaks of how Jesus existed in the form of God, but didn’t view His deity as something to be grasped. But instead of looking at that passage, I want to remind you of something that happened at the end of Jesus’ earthly ministry. How did He demonstrate His gentleness on that last night with the disciples? What did He do to the disciples? That’s right, He washed their feet. He deserved to be worshipped, but He wasn’t afraid to wash the disciples feet. He could have focused on His rights, but He focused on serving.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끌고 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기등등한 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사실 예수님만이 돌을 들어 그 여인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사랑의 눈길로 그 여인을 어루만지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이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정죄하고 심판하고 죽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사랑의 접촉을 통해서 잃은 영혼을 찾아 회복시키고 구원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는 이것이 바로 온유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온유가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성령의 열매이지, 성인군자들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를 온유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가가서 사랑의 손을 내밀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깨지기 쉬운 영혼들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깨지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디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용납해줄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공허한 영혼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온유하게 접촉하라고 먼저 믿는 우리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John 8 shows Jesus’ gentle touch for the immoral, the woman caught in adultery. Jesus did not condemn this woman for her sin. Jesus had the right to throw the first stone because he was without sin, but He didn’t. Instead Jesus reached out to her with a gentle touch and told her, “Go and sin no more.” Jesus did not come with judgment to crush and destroy sinners for their sin. Jesus came in gentleness to restore their relationship with God. Jesus came to save the lost through God’s gentle touch.


The fruit of the Spirit is gentleness—strength submitted to God. Remember it’s the fruit of the Spirit not the fruit of the saints. The Holy Spirit enables us to be gentle so we can reach out and touch those different from ourselves. We can extend God’s loving touch to those who are lost in sin. All around us are people who are broken and hurting, empty and searching for love and acceptance. God does not condemn them; He loves them. We are called to gently touch them with God’s love.


오늘 갈라디아서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 우리 중에 누군가가 명백하게 잘못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그 잘못을 감싸주고 덮어주고 바로잡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일어나서 손가락질하고 매도해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령한 사람들’ 즉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습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그러셨듯이, 정죄하는 태도가 아니라 온유한 심령으로 그의 영혼이 회복되는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도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잘못한 사람이 빠진 것과 똑같은 시험에 빠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사람을 정죄하는 교만의 시험에 빠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고, 정직하면 얼마나 정직하고, 신앙생활 잘 한다면 또 얼마나 잘한다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용서하고 용납하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인 온유인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것, 그것으로 인해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시켜 나가는 것, 그것은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를 지배하실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Gentleness restores those caught in sin; that’s the first part of God’s purpose of gentleness. Did you notice the second reason we are to be gentle? It protects us.


The fireman who goes to rescue those who are unable to help themselves does not rush into a burning building unprepared. They are wearing up to 75 pounds of special equipment designed to protect their lives. You see some of their strength is directed and used to protect themselves from injury or death.


With gentleness we are to restore those caught by sin, but at the same time we are to be on guard. “Watch yourself, or you also may be tempted.” You are going into dangerous territory, so let gentleness protect you from falling into sin yourself.

Gentleness, what is it? Submitted strength, power under control, gentleness is love touching. When we allow the Holy Spirit to produce the fruit of gentleness in our lives, we will be able to make more of a difference than ever before, in sharing our faith, in cooperating with our friends & in living successfully. Let God truly strengthen you through gentleness.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는 통제된 능력이요 힘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갈 때에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창조적인 힘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아갈 때에는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마음에 상처를 주고 파괴하는 힘으로 나타나지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때에는 이와 같이 회복시키고 살려내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속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마음 씀씀이로 세상에서 받은 상처로 아파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격려하는 온유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성령의 사람, 온유의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포함해서 모든 영혼에게 붙여놓으신 'Fragile: Handle with Care' 레이블이 잘 보입니다. 나도 한때 그런 연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 다른 연약한 영혼들을 돌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 앞에 통제된 내 힘과 능력을 가지고 창조적인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온유의 사람이 되십시다. 성령의 열매인 온유를 우리의 삶 속에서 풍성히 맺으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매일 매일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 : 여기 있습니다.
글쓴이 : RU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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