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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의 열매 - 사랑

예사랑교회 2008. 12. 13. 00:26


 

“성령의 열매(1); 사랑”

The Fruit of the Spirit(1); LOVE 고린도전서 13:1-7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아홉 가지의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첫 번째의 열매인 ‘사랑’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3장 본문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여러 가지 은사들을 열거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31절)고 말합니다. 더욱 큰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은사들은 사람들마다 각각 다르게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에 따라서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더욱 큰 은사’는 누구나 사모하고 받아야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은사를 받아, 아무리 교회 일 열심히 하고, 아무리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이 ‘더욱 큰 은사’ 없이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모든 일들은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 ‘더욱 큰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집중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부르듯이, 이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의 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Paul ends 1 Corinthians chapter 12 by saying: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Which means, no matter how gifted you are – no matter how successful in ministry – no matter how close to God – there is one overarching principal that should guide everything we do. Otherwise anything you do for the Lord is a waste of time.


That, of course is love. 1st Corinthians 13 is one of the most famous passages of Scripture. It’s quoted as weddings routinely. But this chapter is far more than that – it is far more challenging than you may have imagined.


바울은 제일 먼저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은사들에 대해서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절)


당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지금 어느 일부 개신교단에서 그러듯이, 방언을 받지 못하면 마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판단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의 방언 뿐 아니라 심지어 천사의 말까지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만일 사랑이 없이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의 귀를 시끄럽게 하는 소음이 될 뿐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2절)


예언하는 은사를 받는 것 대단한 일입니다. 이 세상과 영적인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고 있고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게다가 산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일 사랑이 없으면 I am nothing!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내어놓아 헌금하고, 불행을 당한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선뜻 내어 놓아 쓸 수 있다면 그것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자기 몸을 희생하여 순교하는 자리에 까지 갈 수 있을 정도라면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사랑 없이도 방언할 수 있고, 사랑 없이도 예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랑 없는 지식을 가질 수 있고, 사랑 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랑 없이 구제할 수 있고,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랑 없이 하는 종교적인 행위와 의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사랑 없이 하는 그런 행위들이, 교회 안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뿐입니다. 바른 말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구제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하라는 겁니다. 사랑 없이 하는 바른 말이, 사랑 없이 드러내는 자기의 지식들이, 사랑 없이 하는 구제가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만들어 내고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No matter how much I know – or how much great wisdom I speak, no matter if I utter incredible mysteries that wow the masses – I might as well be just honking my horn in bumper to bumper traffic unless I do it with love. No matter what I can do – healing, miracles – without love it is meaningless. No matter how much I give of myself – I can be the humblest most giving person on earth – even give up my life for my faith – but if I am not flowing in God’s love I might as well not do it.


What kind of love is this? Every time the word “love” appears in this chapter it is the word “agape.” This is different from the other forms of the word “love” in Greek. Phileo is the idea of brotherly love or friendship. The city of Philadelphia gets its name from this word. Eros is the idea of sexual love – we get the word erotic from this word. But Paul doesn’t use any of those words for love instead he uses the word Agape. And agape is less a feeling of the heart and more a feeling of the mind. It is as much an act of the will as an act of the emotions. It is why Jesus can tell us to love our enemies. It is a conscious action, something that you decide to do and something that you cannot do without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in your life.


여기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거듭 사용되는 ‘사랑’이라는 말은 아가페의 사랑을 말합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영어로는 ‘love'라는 단어를 가지고 사랑이라는 말을 다 표현합니다만, 희랍어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랑에 대한 표현법이 있습니다. 필레오 사랑은 형제간의 사랑이나 친구들 간의 우정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에로스 사랑은 이성간의 성적인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의도적으로 아가페의 사랑은 사용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아가페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아가페는 감정의 사랑이 아닙니다. 말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필레오나 에로스의 사랑으로는 원수를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가페의 사랑으로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가페의 사랑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에만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One of the greatest descriptions of this agape love is given in 1 Corinthians 13:4-7. Love is patient and kind. Love is not jealous or boastful or proud or rude. Love is not self-seeking, nor easily angered. An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It is never glad about injustice but rejoices whenever the truth wins out. Love never gives up, never loses faith, is always hopeful, and endures through every circumstance. Those are the characters of this agape love.


본문 4절부터 7절까지 기록된 이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들 가운데, 저는 오늘 특별히 두 가지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5절a)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지면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게’ 된다고 합니다. 감추는 것 없이 속마음을 내어놓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례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서로에 대해서 예의를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에 대해서 무례한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말, 옳은 말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부모의 말 잘 듣지 않습니다.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꼭 기분 나쁜 말만 골라서 하거든요. 자존심 건드리면서 말하는 달란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 문제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고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로에 대해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5절b)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영어로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집니다.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한 일들을 기록해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지난 일 년 동안 잘잘못을 기록해 두었다가 그 성적표에 따라서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듯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한테 잘해준 사람에게는 잘해주고, 날 힘들게 한 사람에게는 똑 같이 갚아주고…. 그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는 기록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용서했다고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차곡차곡 그 기록들을 보관해 둡니다. 그것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것을 꺼내서 써먹습니다. 그것을 용서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사랑은 악한 것을 아예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들을 기록해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심도 해보고 다짐도 해보고 노력도 해보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인생이 주인일 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4-7절까지의 본문 속에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한번 '나'를 집어넣어 바꾸어보면 어떻게 될까요?


Let's change the word 'Love' to 'I' and see how it reads.


"I am patient and kind. I am not jealous or boastful or proud or rude. I am not self-seeking, or easily angered. And I keep no record of wrongs. I am never glad about injustice but rejoice whenever the truth wins out. I never give up, never lose faith, am always hopeful, and endure through every circumstance."


What do you think? Is it working? I don't think so. Then let's change the word love to Christ and see how it reads.


"Jesus is patient and kind. Jesus is not jealous or boastful or proud or rude. Jesus is not self-seeking, or easily angered. And he keeps no record of wrongs. Jesus is never glad about injustice but rejoices whenever the truth wins out. Jesus never gives up, never loses faith, is always hopeful, and endures through every circumstance."


It works, doesn't it? What does it say? It says that You can’t do it. Or maybe it would be more accurate to say You can’t do it yourself. And you don’t have to. Do you remember the scripture that we started with last Sunday? Galatians 5:22-23 But when the Holy Spirit controls our lives, he will produce this kind of fruit in us…. It doesn’t say we will produce, but He will produce. Is that your desire today? When you look at your life does it match the description given in 1 Corinthians 13? If not it can.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나'를 집어넣으면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왜냐하면 나는 도무지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집어넣으면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맞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우리의 감정의 소산물이거나 노력의 결실이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바울처럼 '나는 십자가에 죽었고 이제 내 속에 살아계신 분은 예수님이시다'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갈 때에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만 맛보게 되는 삶의 능력이요 열매입니다. 지난주에 갈라디아서 5장 본문을 묵상하면서 말씀드렸듯이,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에 자연스럽게 달리는 결실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내 속에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겨드린다면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 속에서 만일 이런 사랑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기준에 따라서 사랑할 사람을 선별하고, 내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사랑할 때를 선택하고, 내 이기적인 욕심에 따라 사랑했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인 아가페의 사랑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랑은, 바울의 말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한결같이 사모해야 할 '더욱 큰 은사'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의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사랑하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는 문 닫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무슨 프로그램이 부실해서 교회 문을 닫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 문 닫은 교회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부흥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기 위해 일합시다.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은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일에 매여 허덕거리지 말고, 사랑하기 위해 일해 나갑시다. 사랑이 성령의 첫 번째 열매입니다. 사랑을 회복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Let me close today's sermon with a story from Rev. Moody.

In Chicago a few years ago a little boy attended a Sunday school I know of. When his parents moved to another part of the city the little fellow still attended the same Sunday school, although it meant a long, tiresome walk each way. A friend asked him why he went so far, and told him that there were plenty of others just as good nearer his home.

"They may be as good for others, but not for me," was his reply.

"Why not?" she asked.

"Because they love a fellow over there," he replied.

If only we could make the world believe that we loved them there would be fewer empty churches, and a smaller proportion of our population who never darken a church door. Let love replace duty in our church relations, and the world will soon be evangelized.

Let’s pray together: Lord help us to be patient and kind. To not be jealous or boastful or proud or rude. Help us to not be self-seeking, or easily angered. Help us to keep no record of wrongs. Make us never glad about injustice but help us rejoice whenever the truth wins out. Lord, we want to never give up, never lose faith, always be hopeful, and to endure through every circumstance.

In Jesus' name we pray. AMEN

 아멘.

 

 

출처 : 여기 있습니다.
글쓴이 : RU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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