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장애를 극복한 4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이희아
이름 : 이희아
출생 : 1985년 7월 9일
출신지 : 서울특별시
직업 : 피아니스트
학력 :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
경력 : 2007년 5월 제7회 세계장애인대회 홍보대사
수상 : 2000년 신지식인 청소년상 및 문화예술인상
1999년 장애극복 대통령상
대표작 :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이희아 양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어 있을때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일반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희아양의 어머니는 어릴적부터 마음이 많이 선하신 분이셔서 아픈 사람과 결혼하시는게 꿈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호사일을 시작하시면서 상이군인이셧던 후천적 장애를 가지신 이희아양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구요.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려고 하냐고, 하반신 척수장애인 남편을 간호하기도 힘들텐데 낳지 말라고 하였는데도 이희아 양의 어머니께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아기를 낳고 싶었던 마음이 있으셔서 이희아양을 낳으시게 �구요. 그리고 이희아양이 어떻게 열손가락을 가진 일반인들보다 피아노를 잘 치냐면요 어릴적부터 손가락이 4개여서 손에 힘이 많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필도 잘 못쥐고, 그로 인해 글씨도 잘 못쓰고요.
그래서 이희아양의 어머니께서 생각하신 끝에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구요, 아주 어릴적부터 이희아양은 피아노를 배웠답니다 학교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다니는 주몽학교를 다녔습니다. 물론 이희아양은 손가락이 4개여서 처음 피아노를 배울때는 손에 힘도 없어서 피아노 건반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 나는 노력으로 이희아양은 피아노를 잘 치게 되었답니다. 어릴적부터 훌륭한 피아노 선생님이신 '김미경'님에게 피아노를 배웠구요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피아노 교재 그대로 이희아양도 배웠다고 합니다 바이엘부터.. 피아노를 배운지 지금 아마 10년이 넘었을겁니다. 학교 가고 병원가고 하루에 열시간정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하네요 학원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어머니께서 봐주시고요 이희아양은 일반인들보다 열배 이상 힘들게 연습을 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희아양은 비록 사지 장애라는 병이 있고,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성격도 밝고 활발하고 봉사심이 있고, 일반 여자아이들과 똑같답니다 여자아이들이 다 그렇듯 이희아양도 예쁜옷 예쁜핀등을 좋아하구요 이희아양의 어머니께서 간호사를 하시다가 산부인과의 조산사로 일하시면서 밤에는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에서 지내야 했던 이희아양은 피아노 밑에서 산부인과 놀이를 하는것을 좋아하구요^^ 그리고 이희아양은 의족을 안하면서 조금만 걸어도 다리에 물이 찬다고 하네요
이희아 양과의 인터뷰 기사 내용
“불가능은 없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양 손 다 합쳐 4개뿐인 손가락, 무릎 아래 다리마저 없는 선천성 1급 장애인 이희아(21) 양. 손이 까져 하루도 피가 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혹독한 연습의 반복이었지만 그녀는 손가락이 열 개였으면 해내지 못 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불편한 손을 감사해 한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연주를 하고 싶다는 이희아 양. 그녀의 네 손가락 연주에서는 특별한 감동이 묻어나온다.
▲아직 희아 양의 연주를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과연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 연주가 가능할까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엄마의 열정이 끈기를 길러줬어요. 어떻게 피아노를 시작한지 1년 반 만에 전국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탈 수 있었는지 지금도 신기해요. 7살 때부터 하루 10시간씩 피아노를 쳤습니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야 했어요. 악보 한 줄을 갖고 50번을 연습하고 소화해 내지 못하면 50번을 또 치고 그렇게 해서 안 되면 다시 100번을 연습했어요. 엄마는 완전하게 익히기 전까지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게 했어요. 피아노만큼 노력을 요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때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면 장애를 슬퍼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피아노 안 칠 수 없냐고 엄마에게 울면서 매달렸었는데 지금은 정말 감사해요.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피아노를 거부했던 때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피아노 선생님만 봐도 숨이 막혔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하지만 기적 같은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오른 손을 쓰지 못해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치는 라울 소사(캐나다)의 내한공연에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정한 예술이 주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장애가 있고 없고, 피아노를 잘 치고 못 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라울 소사는 개인적으로 저를 격려해 줬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캐나다 공연도 감회가 남달랐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은 저를 캐나다로 입양 보낼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20년 후 버림받은 아이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당당히 캐나다 땅을 밟은 것이었거든요.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는 삶임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고 무대에 오르십니까?
-전 정말 단순해요. 간단한 산수도 전혀 못하는 걸요. 제가 작고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더 귀하게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마더 테레사나 헬렌켈러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곳을 가던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주요.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겠죠. 피아노를 빼어나게 연주할 수 있는 테크닉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4년 전 세계원자력회의 초청연주에서 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대만 사람이 저의 연주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전해왔어요. 하나님이 저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에 네 손가락의 연주가 그분의 마음에 들렸던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고 보살펴 주시고 인내로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분들의 정성이 제 마음 밭이 되고 있습니다.
▲언제 봐도 항상 밝은 얼굴이에요.
-제 이름 뜻이 ‘기쁨의 싹’이에요. 낙천적 성격은 타고 났고요. 기질상 고민 같은 것 잘 할 줄 몰라요. 네 손가락으로 태어나 지금의 삶을 살게 된 것이 제겐 행복합니다. 열 살 때 쓴 일기에도 이렇게 적혀 있어요. “나는 손가락을 두 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 손을 생각해 보면 아주 귀한 보물의 손이다”
사실 저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어요. 오랜 시간 연습하면 많이 아파요. 의사 선생님은 당장 피아노 연주 그만 두라고 하죠. 하지만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삶의 원칙입니다. 내일 일은 걱정하지 않아요. 힘들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서 감동을 전할 겁니다.
▲좋은신문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으면 좋겠어요. 목표를 갖고 부단히 노력하면 자신만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희아 Profile
▷1985년 7월 9일 대한민국 서울 출생
▷국립학국재활복지대학 멀티미디어음악과 재학중
▷전국학생음악연주평가대회 최우수상(국제청소년예능연구회), 장애극복 대통령상(김 대중 대통령), 문화 예술인상(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 등 수상
▷캐나다 순회 공연, 미국 CNN, abc News, KTAN News 등 방송출연연주 외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